결정의 감정적 무게: 피보나치와 무슨 상관이며 삶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
지난 경험과 지금의 상태가 어떻게 결정을 빚는지, 그리고 그 이해를 실제로 어떻게 쓸 것인지.
자연에서 성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헤아리다 보면 되풀이되는 무늬가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많은 체계에서 새로운 형태는 앞선 형태의 연장으로 나타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예 가운데 하나가 피보나치 수열로, 다음 값은 앞의 두 값을 결합해 만들어집니다.
이 관찰은 비슷한 논리가 사람의 행동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글자 그대로의 수식이 아니라 원리로서 말입니다. 어떤 새로운 상태도 무에서 생기지 않고, 이미 있었던 것과 지금 벌어지는 것에서 조립된다는 것입니다.
이 렌즈로 결정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자기 경험 전체에 곧바로 기대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대신 압축되고 가공된 판본을 씁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건은 거의 사라지고 어떤 사건은 증폭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핵심은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적 무게입니다.
본론
우리는 스스로 이성적으로 결정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사실이 있고 지식이 있고 논리가 있어서 거기서 선택이 나온다고요. 실제 느낌은 다릅니다.
결정하는 순간, 사람은 지난 경험을 하나하나 훑지 않습니다. 당연하고 옳게 느껴지는 몇 가지 내적 감각에 기댑니다. 그 감각은 이미 가공된 경험의 결과입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건은 무게를 잃었고 어떤 사건은 더 굳어졌습니다.
굳어지는 것은 객관적으로 중요했던 일이 아니라 더 강하게 겪은 일입니다. 감정적 반응이 없는 경험은 이후의 결정에 거의 참여하지 않습니다. 배경으로 물러납니다. 반면 감정이 실린 사건은 본인이 알아채지 못해도 계속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결과 사람은 어느 순간에도 경험 전부가 아니라 그 시점의 판본을 다룹니다. 압축되고 뒤틀리고 군데군데 증폭된 판본을요. 그리고 그것이 다음 걸음을 빚습니다.
하지만 과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지금의 상태 또한 그 경험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영향을 줍니다. 같은 사실의 묶음도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한 번은 위험으로, 한 번은 기회로요. 사실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보는 자리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결정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가공된 과거와 지금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새로운 층이 되어 앞으로의 걸음에 참여합니다.
피보나치와 견주자면, 닮은 것은 정확한 수식이 아니라 원리 그 자체입니다. 새로운 것은 따로 떨어져 나타나지 않고, 앞선 것을 이어받아 바꿉니다. 다른 점은 여기에 단순한 덧셈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는 것은 증폭과 감쇠, 그리고 다시 읽기입니다.
결론과 적용
이것을 하나의 모델로 다루면 실용적인 지렛대가 생깁니다.
선택하는 순간, 그 결정이 이미 물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실뿐 아니라 그 사실을 통과해 보는 감각도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지금 상황과 곧바로 이어져 있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나 상황을 밖에서 바라볼 여지가 생깁니다.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입력의 일부로 보기 위해서요.
-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 어떤 상태가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 지난 경험의 어느 부분이 지금 증폭되고 있을 법한가.
그런 다음 단순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이 내 상황이 아니라, 같은 조건을 받아 밖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면 무엇이 합당한 한 걸음일까.
그 순간 사람은 자기 자신의 관찰자이자 조언자가 됩니다. 결정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밀도가 달라집니다. 우연한 감정의 색이 줄고 구조가 늘어납니다.
이 모델의 실용적인 값어치는 결정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바꾸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이 이미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볼 줄 알게 되는 데 있습니다.